성장하는 개발자에 대해서

토스 러너스 하이 2기에 지원하게 되었는데요. “잘 하는 개발자란 어떤 개발자인가”라는 질문이 있어 요즘 드는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어떤 개발자가 잘하는 개발자일까요?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 경험이 있는 개발자? 대용량 설계 경험, 쿼리 최적화 경험, 장애 극복 경험, 모니터링 구축 및 운용 경험이 있는 개발자? 채용 시장에서 중요한 건 이러한 정량적 지표들입니다. 특정 시점에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채용이니까요. 하지만 JD 기반 평가는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역량을 갖추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개발자가 잘하는 개발자일까요?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인정받는 경력? 하지만 외부 기준으로는 개발자의 본질적 역량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 보편적 역량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면 육각형 개발자를 추려낼 수 있을까요?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능력, 문제를 파악하고 기술로 옮기는 능력,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능력… 하지만 좋은 개발자란 이 능력들을 정형화해 갖춘 사람이 아닌, 상황과 위치에 맞게 적절히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이 지점에서 탁월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탁월함은 비교를 통해 발생합니다. 남보다 잘하면 성공이고, 과거의 나보다 잘하면 발전입니다. 개발자에게 있어 탁월함이란 성공일까요, 발전일까요?
정량적 평가가 무의미하다는 느슨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개발자의 역량은 닫힌 실험실이 아닌 열린 시장에서 측정되는 것이기에, 순수하게 정량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저는 “결핍을 인식하고 그것을 메우려는 지속적 긴장 상태”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새벽에 집 앞 산행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늘상 다니던 길인데도 어두컴컴할때 가면 곤두선 느낌을 받습니다. 이 길이 맞나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고, 평소에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울타리의 위치, 바위의 크기, 길의 폭.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긴장하고 관찰하게 됩니다. 안전망이 희미해지니 감각이 날카로워진 것입니다.
긴장 상태는 본질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구직 중일 때, 커리어가 정체된 것 같을 때, 기술적으로 막혔을 때, 우리는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내가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 이 방법이 최선인가? 더 나은 방식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은 안정적일 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결핍을 회피하지 않고 그 안에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태도입니다. 한 번의 높은 성과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끼고 채우려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딱 한 번 높은 파도를 타보려는 서퍼가 아니라, 계속 바다에 머무르는 서퍼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하는 개발자는 특정 시점에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개발자는 환경이 바뀌어도, 요구사항이 달라져도, 기술 스택이 변해도 본질을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특정 답을 외운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냥 개인적인 제 이야기입니다.
-
개발을 처음 꿈꿨던 건 2016년에 iOS 개발 수업을 들으면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군대를 안 다녀와서, 군대를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진로를 바꿔 보자고 마음먹었죠. 군대에서는 VBA나 파이썬을 독학하면서 시간을 때웠습니다.
-
그렇게 2019년 여름에 군대를 전역하고 무작정 강남의 아무 게임 회사에 찾아가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일 시켜달라는 말은 선뜻 못 꺼내고 심드렁한 표정의 대표님 앞에서 쩔쩔매다 나왔었죠. 아직도 부끄럽긴 한데 꽤 소중한 경험이 됐습니다. 요즘 인스타 광고 많이 하던데, 괜시리 제가 다니던 회사같고 애착이 가네요. 돈 많이 버셨으면 해요.
-
아무튼 그렇게 로켓펀치로 IT 관련된 회사는 모두 찔러보다가 들어갔던 게 스윙입니다. 테크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소망은 이뤘지만, 운영관리 직무다 보니 뭔가 욕심이 더 생기더군요. 갓 20살 개발자분들이 킥보드도 제어하고 유저 앱이랑 어드민 페이지도 만드는데, 너무 재밌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퇴사하고 SI 회사에서 개발자로 전향해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
그런데 독학해서 취업했으니 깊은 수준을 이해할 리가 없죠. 때문에 강박적으로 교육을 찾아다닌 것 같습니다. 과감히 퇴사하고 참여했던 크래프톤 정글 부트캠프나, 몇백만원짜리 F-Lab 멘토링을 들었던 것도 그런 강박 때문이었습니다. 잘 모르니 일단 시간, 돈, 노력을 쏟아부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강박이란 게 자꾸 사람을 갉아먹더라구요. 뭐 대단히 한 건 없는데 뭔가 해야할 것 같고, 그래서 쉬질 못하고. 그래서 지금은 좀 내려놓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전문가나 클라우드 아키텍처는 무슨 일을 하는지, 흥미로울만한 대학원 과정이 있는지 등을요. 안될 것 같은 기업들에 지원서도 찔러 보구요. 책도 읽고 TLDR이나 해커뉴스같은 커뮤니티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우여곡절 여기까지 왔으니 다음에도 잘 갈 수 있겠죠…